KO JI YOUNG
2009.1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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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x50 oil on canva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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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하고 참된 진술_고지영展

김최은영(미학, 자하미술관 책임큐레이터)

어쩌면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고지영이 만들어낸 형상이 정물을 닮았건 풍경이건 혹은 추상적이거나 구체적일지도 모른다는 구분법은 중요한 지점이 아니라는 말이다. 흔히 지각과 사고 간의 잘못된 이분법은 ‘추상적’물체와 ‘구체적’물체들을 마치 그들이 상호배타적인 두 집합에 속한 양 구분하며 드러난다. 즉 추상적인 것이 동시에 구체적일 수 없는 듯, 또는 그 반대일 수도 없는 것처럼 나누어 놓곤 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선 해로운 이분법을 찾아볼 수 없다. 고지영은 언제나 심상의 이미지를 모색하는데 열중 한다. ‘진심으로 그리고 싶은 것’이나 ‘진짜로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가’ 등의 원론적인 고민과 모색이 그의 작업을 이루는 주축이다. ‘미술(그리기)’이라는 정규교육을 받으며 누구나 한 번쯤은 했을 만한 고민들. 그러나 그러한 고민은 사유까지 도달하지 못한 채 이내 쉽게 잊혀지고 너무 금방 익숙해져버려 누구나 기억하지만 되새기지 않는 이야기들이 된다. 그런 원론의 ‘그리기’를 ‘이미지’라는 형상을 고수하며 고지영은 사유의 체계까지 끌어올려 스토리나 이야기를 배제한 그저 오롯한 ‘그리기’만으로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손쉽게 정의 내린 정물화나 풍경화, 추상과 구상 따위의 분류 중 그 어디에서 속하지 않는 고지영의 그리기 속 존재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쓸모있게 모호한 것들.

고지영의 회화는 반드시 형상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형상은 지각이라는 선행을 필요로 하지만 그는 심상이미지에 대한 사유를 마치 관찰자와 같은 시선으로 지각하는 정신적 경험에 도달한다. 형상 또는 사유는 그것을 지각하는 사람과 분리될 수 없다. 형상이 실제로 즉자적일 수가 없는 것은 우리의 실존이 그것들과 항상 매개되어 있기 때문이고, 시선의 끄트머리 또는 감각적 탐색의 끝에서 정립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혹은 존재할 것 같은 것들을 그리는 고지영에게는 감각과 선택적 타이밍이라는 필요충분조건이 반드시 전제된다. 이미지에 대한 사유가 최대한 명료함을 띨 때, 그는 현상들을 관통해서 색깔이나 실재적 형태에 도달하게 되고, 그 순간 형태나 색, 앞과 뒤, 형태들의 관계 등 화면의 모든 순간의 선택이 발현되는 것이다. 고지영의 화면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태생적 혹은 필연적으로 갖고 있는 특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견고함이나 따뜻함, 차갑거나 말랑한 선천적 특징들은 고지영이 선택한 색감과 원근, 붓질로 인해 여실히 깨어지고 전혀 다른 속성을 부여 받는다. 그러나 그렇게 부여받은 새로움은 단순히 ‘낯설게하기’ 같은 수사학적 방식이 아닌 충분히 납득될만한 성질의 것들이어서 매우 자연스레 화면에 동의하게 만들어 버린다. 집이 아닌 집, 덩어리인 덩어리가 아닌 것들, 불안정한 구조물이 안정적으로 보이는 아이러니함은 모두 고지영 회화의 특징이며 모두 같은 방식으로 작가가 선택적으로 새롭게 구성한 성격을 부여 받은 쓸모 있게 모호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쓸모 있게 모호한 것들은 고지영의 회화 속에서 독단적이라기보다 유기적 구성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놓.여.진. 사물들의 보기 좋은 표현에 국한된 것이 아닌 고지영의 사유로 잉태된 이미지들이 화면 속에서 미묘한 자기 자리를 잘 찾아 앉아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관계성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관계는 사물을 독립된 즉물이 아닌 서로 중복되어 결합하고 인접하는 요소들 간의 미묘한 균형으로 은유적 스토리를 만들어 내곤 한다. 물론 이렇게 스토리가 있을 법한 극적 구성은 고지영이 전혀 의도한 바는 아니다. 그러나 시각창작예술품은 종종 우리에게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경우가 있다. 이는 작가가 습득한 언어 대신 ‘아직 배우지 못한 단어들(고지영 1회 개인전)’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 중 몇몇은 개인적 경험에서 온 나쁘지 않은 오독이나 동시대인의 감상 등으로 소통이라는 통관의례를 거쳐 고지영의 단어를 이해하거나 자신의 범위만큼 믿어 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이나 손에서 펼쳐진 감각적 소여들은 그 자체가 새로운 언어, 즉 아직 배우지 못한 단어로 의미의 기호와 같은 구조를 띤다. 이것은 감각적 현상을 드러내는 것이요, 사물에 대한 지각이 아닌 심연의 사유 그대로를 표현한다. 이것은 작가의 이미지 사유에 대한 감각적 경험들이며 그들의 결합에 의해 가시적 증언이 되고 표징이 된다.

고지영이 회화에서 사용한 새로운 단어들은 일차원적으로 드러나려는 욕망을 억제시켜 단순한 묘사나 진부한 고뇌, 안일한 아름다움을 배제하였기에 진실성에 다가설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그러나 심오한 사유와 궁극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가장 은밀한 부분을 노출시킴으로써 스토리를 배제한 ‘진심으로 그리고 싶은 것’이나 ‘진짜로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가’에 대한 적절하고 참된 진술을 드러낸다.


위 글은
* Maurice Merleau-Ponty 著/ 류의근 譯 『지각의 현상학』, 문학과 지성사, 2002
* Rudolf Arnheim 著/ 김정오 譯『시각적 사고』,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4
를 참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