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 JIN SE
2009. 10. 9 - 30
  LIST
Art Works
 
Installation Views
Press Releases
 
거기, 헤진 끝자락


최은경 (작가)
1. 그냥 마음 가는대로 아니, 마음도 모르게 그저 듬성듬성 박아 놓았던 얼개: 낱낱의 나무와 돌멩이, 잡풀들을 얼기설기 선으로 연결하고, 그것에 살을 붙인다.

2. 거기: 용마산이거나 도봉산, 혹은 북한산의 언저리, 그 어디쯤일 것이다. 사실 서울의, 특히 강북의 산들은 일상을 벗어나야 접할 수 있는 지대라기보다는, 하루에 한번쯤은 엉겁결에라도 무심코 쳐다보게 되는, 그야말로 일상의 틈으로 들어와 있는 이만저만한 경치이다. 산은 언제나 하늘과 맞닿아 있다. 때론, 이쪽과 저쪽의 선을 긋는 병풍 같다. 그렇다고 아스라이 멀리 있는 경치는 또 아니다. 공간적으로도 중경(中景)쯤 되는 거리감이다. 글쎄 일상의 반경에서 결코 벗어나 본적 없는, 날씨 같은, 일상의 곁두리 경치랄까. 임진세는 그런 경치 안으로 들어가, 그곳의 ‘거기’를 더듬더듬 둘러보고 그렸다. 거기의 속살로, 우리의 속내를 담는다.

3. 형편대로: 그가 그린 [등산로 풍경]은 인파가 북적대는 주말이 아닌, 평일의 등산길처럼 보인다. 한적하고, 조촐하다. 청량하기도 하고, 간혹, 헛헛하기도 하다. 평일에 등산길을 찾는 이들은 일상의 중심에서, 사회의, 필요성의 영역에서 약간 비켜나 있는 이들일 것이다. 스치고 지나간다. . 그래서 그곳의 자연은 경관, 스펙터클이 아니라, 그저 우리를 닮은 나무요, 잡풀이며, 물이고, 돌멩이다. 그 틈에 들어선 인공의 것들마저도 나름의 용무대로 담담하고, 순정하게 들어서 있고, . 뭐하나 남는 게 없다. 모자람도 없다. 우린 그곳에서 잠시라도 세간에 발목 잡히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을까?

4. 몸, 오롯이: 그는 머리로 배워 아는 것을 보이는 게 아니라, 몸으로 체득한 어떤 감각을 우리에게 툭툭 던져주며 말없이 말한다. . 그야말로 그의 ‘형편대로’ 그가 체험한 세계로 보여준다. 아니, 그가 체험한 만큼의 세계를 담담히 그림으로 그려 나간다고 해야 더 정확할까. . 일상의 끄트머리, 일상의 접면(接面)에서 사회성을 획득하는 방법.

5. 색: 자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도시의 간판색이 들어와 앉아 있다. 그 앉음새는 임시방편적이다. 파란 호스, 녹색 방수포, 빨간 플라스틱 의자, 파란 간이 의자, 빨갛고, 파랗고, 노란 파라솔, 등등. 다소 경박했던 원색은 풍진 날씨와 오고가는 사람들의 손때에 닳고 닳아 헤지고, 순정해졌다. 어려서 들어온 이 인공의 것들은 철들면서, 날것의 사사로운 자연의 억지에도, 그 풀잎 하나하나의 사소한 흔들림과도 어우러질 줄 안다. 이제, 헤진 색은 에둘러, 여분이고, 여지(餘地)가 되었다. 그의 그림이 이것을 스케치한다.

6. 물기: 유화를 묽은 수채화처럼 사용한다. 엷은 색의 담채로 표현한다. 유화로 그리는데 오히려 아크릴로 그릴 때보다 물기가 더 생겼다. 붓질에서 스며 나온 물기. 물기에 바람이 닿아 일렁이고, 일렁임은 무늬가 된다. 물기는 물빛으로 용기(容器)가 되어 내용을 담았다. 바람을. 바로 우리 삶의 결을

7. 凡無形而致者皆曰風: 무릇, 생김이 없으면서도, 이를 데 없이 마땅히 그러한 것을 일러 ‘바람’이라 한다.

8. 삶의 결을 엮고, 잇는데, 붓질이 그 결을 따른다. 붓질(stroke)의 수행성: 그의 그림은 대놓고 현실을 발산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의 결을, 사람의 결을 반추하고, 수렴한다. 사람의 결을 모른 체 하지 않는 것, 그 지극한 행동이 ‘이념’이라고. 어느 책에서 포괄적으로, 그렇게 읽었는데, 이런 간명한 시적 표현은 나름의 통찰이고, 그만큼의 요약일 것이다. 방기된 너른 공터에 사람의 결이 켜켜이 쌓여 포개지면 ‘역사’라는 지리멸렬한 이 낡은 용어가 본래 의미하는 바가 될 것이다. 말하자면, 임진세의 그림은 이런 걸 사설로 길게 설명하거나, 어떤 상징으로 일러스트하지 않으면서, 단박에, 넌지시 응축(凝縮)한다. 그간에 선배 작가들이 보여준 역사에 대한 비장이나 얽매임이 그닥 보이지 않는다. 이건 그만의 유연함일 텐데, ― 우리 삶은 원래 잡풀 같은, 생김(形)이 없는 문서 바깥의 행적이라, 공인된 역사에는 언제나 기록되지 않은 ‘나머지(rest)’이므로. 그러므로, ‘나머지’인 우리 낱낱의 행적들을 ― 몸을 사리지 않고, 축내지 않으면서 온전히 보여주기에는 아예, 통째로 응축하여 보여주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으니, 하여튼, 붓질로 그렇게 한다. 그런데 그는 딱, 그의 체험과 상응된 붓질로 그렇게 한다. 형태(形)에 미혹되지 않게 닮지 않는 방법으로 닮도록, 마땅히 그것이 되게끔 소묘한다. .그림을 그리는 나는 그의 그림을 보며 생각했다. 마침내, 붓질일까. 내 생각에,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많아도 붓질의 수행성으로 소묘하는 화가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9. 그의 그림은, 사뭇: 늘 그렇듯이 특별히 더함을 표하는 기색 없이, 그저 편하고, 격의도 없다. 자연이든, 인공이든, 삶이든 뭐든. 그런 것이 간혹, 오히려 인공의 언저리에서 무엇이 보일락 말락 나풀댄다. 미끄덩대는 얇은 간이 화장실, 플라스틱 의자의 즐비한 삐걱거림, 파라솔의 느슨한 흔들림. 그 어디? 헤진 끝자락, . 능숙하다가도 서툴다. 자연과 사회성(인공) 사이의 진동. 품앗이. 어울림의 놀이. 그것의 맞바람. 바람 중에 가장 좋은 바람은 뭐니 뭐니 해도 양쪽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일 것이다.
그리곤 다시, 활달하고, 너끈한 결기로 일상의 얼개를 촘촘히 엮는다. 선선한 삶의 동심원.

10. 다시, 바람: 하여, 바람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봐야 할까? 걸어봐야 할까? 만져봐야 할까? 나의 온 감각을 맨발로 열어 놓아야 한다? 어떻게? 늘 배워서 아는 나로선 그런 게 어렵다. 무척 어렵다. 허나, 그런 나도 그처럼 바람을 느끼는 걸 지체하고 싶진 않다. 어느 새 바람처럼 휙, 사라져 버릴 테니까.




* 이 글에서, ‘바람’의 의미는 포괄하는 여러 의미로 중의적으로 썼고, 7.은 「說文解字主」를 참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