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2008. 3. 14 - 3. 24
  LIST
Art Works
 
이길우
동문서답 (미인도)_장지에 혼합_120×95cm_2007
Installation Views
Press Releases
 
고산금_전시장면
박용일_종이배 풍경_캔버스에 아크릴릭_80.5×117cm_2008
이상선_兒孩-날으는 들꽃_캔버스에 아크릴릭_91×117cm_2007
정재호_안암맨션_한지에 채색_130×160cm_2006
한기창_혼성의 풍경_캔버스에 시트 컷팅_80×80cm_2008
윤정선_편지를 부친뒤_캔버스에 아크릴릭_42.5×69.5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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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이야기인가?

미술이 역사에 격렬히 개입했던 시기가 있었다. 주요한 이데올로기를 생산해 내고 그 의미를 찾기 위해, 우리의 생으로부터 추방당한 역사를 구원해 낼 수 있는 피난처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리하여 상실된 지시물(指示物)들을 다시 살아나게 하고 현실로부터 쫓겨난 생의 고백을 통해 관념의 상아탑(象牙塔)에 갇힌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추방당한 역사 속에서 의식적으로 이러한 것들을 길어 올리거나 포착에 열중했던 이 시기의 예술은 파탄의 도정에서 만난 한 줄기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당대의 미술에선 그러한 이데올로기나 움직임 따위는 한갓 지나간 추억의 끝자락일 뿐이다. 이젠 세상이 달라진 것이다. 예술가들의 붓은 더 이상 타인을 위하거나 혹은 세상을 위해 존재하지 않아도 그들을 대리해줄 수많은 매체는 물론, 굳이 그러한 역사를 재생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는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장미빛 미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관념과 대립할 필요도,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현실을 고발할 필요도 없으며 오직 자본이 주는 안락함을 꿈꾸며 그것에 의탁하기만 하면 된다. 현실이라는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사건 혹은 최소의 역사는 우리 앞에 뒤죽박죽 재생되어진다.
그것은 어떠한 강제적인 생각에 따라 선택되어 질 수 있고 끊임없이 쌓이게 되는데, 예술가는 이것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 혹은 특권을 가진 이들이다. 작가들의 화면은 바로 이러한 최소한의 역사나 사건이 개입된 공간이었고, 그 최소의 이야기들이 바로 미술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작가들의 화면에서 이러한 사건 혹은 역사가 지워진 것은 20세기 현대미술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기도 하다.
예술이 되게 하는 구속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궁극에는 미를 제거함으로써 예술가들은 어떠한 구속과 신념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그것은 다시 한번 보는 방식과 사고하는 방식을 바꾸어 주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텅빈 캔버스, 바야흐로 현대미술의 새로운 신대륙이 또한번 발견된 것이다. 선언만이 유일한 길이었던 미술이, 그 선언문의 강령을 충실하게 이행해야만 되었던 미술이 이제는 미술을 둘러싼 구속들을 제거하고, 궁극에는 미 그 자체를 제거함으로써 오히려 더많은 예술을, 더 폭넓은 예술을 획득할 수 있게 되었고 어떤 것이든 아무 것이든 예술인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오늘날 글로벌화된 전 지구상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다양한 현대미술은 더 이상 일정한 틀 속에서 원활하고 예측할 수 있는 움직임의 궤적이나 통용될 수 있는 과거의 체험을 답습하지 않는다. 이제는 화면 위에 은막 위의 과거를 추억할 필요도, 현실로부터 쫓겨난 역사를 불러들일 필요도 없다. 단지 단절된 현재의 지속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오늘날을 사는 우리의 미술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들은 사고의 종착점을 향해 나아가기 보다는, 달라지는 시대와 환경 속에서 주체적으로 대응하여 변화의 의미와 방향의 한계를 설정하여 자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기보다는 한 편의 시나 소설처럼 예술을 위한 소재의 수단으로 사용될 여지가 다분하고, 이러한 현실은 당대의 예술이 삶에 대해 갖고 있는 대표적인 오해이기도 하다.
예술은 결국 생의 고백이며, 예술가는 사고하는 능력을 넘어서 사는 능력을 자기의 것으로 한다는 이환의 발언이 되새겨지는 대목이다. 한 세기 전의 예술적 감동이 오늘날 똑같은 폭과 무게로 다가올 수 없듯, 한 세기 전의 예술적 고민과 지금의 예술적 고민, 혹은 지향점은 동일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거나 제시되고 있는 예술은 그 예술적 개념이 확립된 이후의 것이고,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가지가지의 시도와 대답의 한 방편이다. 격변하는 세상에 시시각각으로 달라지고 있는 생활환경 속에서 예술 또한 가속화되는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음은 물론 생각과 행동을 재조정 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당대의 예술가들은 시대의 요구에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이런 견지에서 볼 때 나는 현대미술에 기반한 많은 작가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노력의 핵심에는 인간의 사고에 대한 자각과
그 본질적 양태를 밝히려는 꾸준한 자기정화적(自己淨化的) 반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물리적인 변화와 발전만을 표방하는 것이 아닌 인간이 무엇이며, 그 자체로 지상(至上)의 가치를 위해 성찰하는 것이 오늘날의 미술에서 내가 찾고 싶은 혹은 바라보고 싶은 주제일지도 모른다.
다시, 현대미술은 모든 제약에서 자유로워짐으로써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 있고, 예술가의 손을 거치지 않은 어떠한 것도 예술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뒤에 따르는 공허는 여전하다. 예술이라고 여길 수 있는 관념들을 다 제거하고 나면 쟁취될 것만 같았던 미래의 이상적인 예술은 막상 마주하고 나니 의미와 말의 재생산 혹은 그것의 과잉생산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허무함은 현대미술이 주는 또다른 고통이다. 학살의 망각도 학살의 일부라고 했던 보드리야르의 말처럼 현대미술이 지향했던 환영들을 망각하는 것 또한 예술가들의 직무유기이다.
최근 우리 미술은 갖은 방법으로 감각적 색채를 발산하는 데 몰두하거나, 섬세함과 스릴 넘치는 세계를 그리워하는 데 매혹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리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성찰하면서 감각 당하는 인간이기를 거부하고 감각하는 인간으로 거듭나려는 작가들의 행보는 많은 주목을 요구한다. 특히, 서사적 내러티브를 통해 감각으로만 함몰되어 가는 의식세계를 구출하는 무기로, 개념과 철학에만 빠져있는 예술을 건져 올리는 도구로 활용하는 작가들의 화면은 감각의 이면이 아닌 삶의 내면을 드러내 주는 좋은 전범이 되고 있다. 지금 7명의 작가(고산금, 박용일, 윤정선, 이길우, 이상선, 정재호, 한기창), 이들이 삶에서 감성과 직관으로 길어 올린 마음의 낱말들, 그 언어들이 모인 두꺼운 책이 열린다.

박준헌 (미술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