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MITIVE ART, AFRICAㆍOCEANIA
2008. 5. 8 -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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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말씀

우연한 기회에 아프리카 木器를 接해본 나는 우리나라 木器와는 또 다른 造形渼와 아직도 때 묻지 않은 원시적 순수미에 매료 되었습니다.
다양한 표정의 가면, 못하나 쓰지 않은 가구들, 의식이나 전투 때 사용한 도구와 농기구들.
그것들이 가진 형태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조형미였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아직도 순수하게 自然美를유지하고 있는 곳이 아프리카. 바로 여기에 아프리카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木器는 森林이 우거진 中西部 아프리카(West Middle Africa)에서 발달되었습니다.
라이베리아(Liberia), 아이보리코스트(Ivory-coast), 가나(Ghana), 나이지리아(Nigeria), 카메룬(Cameroon)등 農耕生活을 영위하는 熱帶森林地帶에서 生活道具, 祝祭, 또는 儀式등에서 쓰여 지는 목기들로서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造形渼와 순수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카소를 비롯한 현대 미술의 대가들의 작품 중에 아프리카 미술에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보았을 때 아프리카의 ART가 Modern Art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현대 미술의 대가들의 이 아프리카 미술에 심취했듯이 나 또한 아프리카 목기에 미쳐 20여년을 Collection 해 왔습니다. 아프리카의 원시 미술을 여러분과 함께 감상할 기회를 가지고자 합니다.


2008. 5 이목화랑 대표 임경식





■ 아프리카 조각

아프리카의 예술은 주로 종교적이다. 의식과 제식(祭式) 의 대상으로써 조각은 직접적으로 인간의 속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데 공헌했다. 가면과 인물상은 자연적 힘을 달랠 수 있으며, 불운을 바꾸거나 피하고 전세대와 후세대 간의 유대를 확립시킬 수 있으며, 사회적 의무와 가치를 받들고 강화할 수 있는 영혼과 정신의 구현이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형상보다는 그 기능 때문에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덧붙여 말하자면 가면이 전체 풍속의상의 오직 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며, 춤추는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돌았던 것처럼(종종 어둠 속에서) 형태 구조의 새롭고 두드러진 양상들이 의미심장하게 표현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의 가면을 우리가 바라볼 때 없어진 요소들인 음악과 움직임 또한 기억되어야 한다. 지난 20년 동안 아프리카 예술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늘어나서 한때 단순히 ‘서 아프리카지역’ 혹은 ‘수단지역’ 으로써만 묘사되었던 작품들이 지금은 특정한 민족의 것임이 밝혀질 수 있다는 시점에 도달하였고, 수집가들은 해당부족 스타일이나 주제의 다양성들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주로 과거의 것이었던 이런 전통 예술의 진정한 역사를 확립하는데 에서 그 출발점이 시작된 것이다.


■ 가나
머리가 크고 둥근 아샨티족 조각
- 아샨티족 여자들은 결혼을 할 때 아주 머리가 큰 인형조각을 가지고 간다. 두 손을 벌린 것보다도 더 큰 머리는 건강한 아이의 출산을 바라는 마음의 크기이기도 하다. 언젠가 태어날 아이를 위해 부모는 내내 그것을 쓰다듬으면서 소망을 담았다.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의 마음이 담긴 조각을 가지고 놀고, 아이가 크면 동생이 가지고 놀고 또 밑의 동생이 가지고 놀면서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불행이 닥쳐 부모가 없어졌다 할지라도 아이들에게 부모는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조각을 통한 부모의 끈은 아이들에게 그리고 형제에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부모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조각을 가지고 논 아이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보살필 수 있었던 것이다. 형제간으로까지 이어져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한 힘, 아이와 연관된 조각들은 그런 부모의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었다.

동물이 새겨진 의자조각
- 등받이가 없는 아샨티족의 의자가 권위 혹은 권력에 기대어서는 안 된다는 피지배계층의 바램이 담겨있다면, 등받이가 있는 의자는 권력과 권위에 대한 지배계층의 욕망을 담고 있다. 하늘보다 높지 않고 땅보다 낮지 않은 아샨티족의 의자는 지도자가 몸을 낮추어야 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빗 모양이 새겨진 아샨티족 조각
- 아프리카에서 빗은 비와 동일시되는 개념으로 아샨티족의 빗 조각에는 비에 대한 소망이 잘 나타나 있다. 머리와 가슴 부분에 있는 수평과 수직형태의 지그재그 문양은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표시이다. 머리카락을 빗줄기와 동일시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상으로 사용하는 빗에 인간의 형상이나 문양을 새겨 넣어 집안에 걸어둔 것, 이는 미적인 표출 이외에 간절한 소망을 이루고 싶어 하는 주술도구와도 같은 것이다.

■ 가봉
두 손을 하나로 모은 팡족의 조각
- 두 손을 하나로 모으고 있는 팡족의 조각은 서로 다른 두 집단간의 화해를 위한 조각이다. 이 때 두 손이 서로의 다름에 관한 것이라면, 두 손이 쥐고 있는 잔은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이데아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런 조각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화합의 문제가 비단 종족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지향하는 집단 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 즉 인간다운 세상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에 있어서는 서로가 동일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계임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 나이지리아
모자처럼 머리에 쓰는 요루바족 조각
- 혼례에 사용되는 조각상이나 탈이 형상에서는 조상신을 표현하면서 형태는 종족의 기원과 관련된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모습은 결코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조상신과 시조신, 즉 가까운 과거와 먼 과거를 현재의 시간으로 끌어들여 부부됨의 의식에 연결시키는 것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부부됨이란 신과 인간의 관계는 물론 양가의 부모나 친척, 나아가 공동체와 개인 등 서로 다른 두 개체의 합일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가 된다.


■ 라이베리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마노족 조각
- 아프리카에는 인간의 의미를 생명의 잉태와 관련시킨 조각이 많이 발견된다. 배위에 두 손을 얹고 복식호흡을 하는 듯한 여인 조각이 바로 그것이다. 생명의 시작에 신이 개입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피조물의 한계를 절감해야 했던 인간, 그런 인간이 자신과 같은 생명을 잉태했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다. 결과적으로 생명의 잉태를 묘사한 조각은 현재를 기점으로 과거와 미래가 지속되는 연속성의 과정이다.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잉태를 단순한 사건으로 보지 않고 메시지로 받아들인다. 살아있는 사람들 즉 부모나 친척뿐만 아니라 과거의 먼 조상까지도 연결시켜주는 접점이 되는 것이다. 내 아이가 우리 아이로 불리는 것도 바로 그런 연유이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포함하여 우리로 확장되는 것, 이는 인간의 기원과 존속에 관한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 말리
문과 제기에 인간과 동물을 함께 새겨 넣은 도곤족 조각
- 아프리카에서의 친족체계는 살아있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까지 수직적으로 확대된다. 그런 점에서 도곤족의 문이나 제기에 조각되어 있는 인물들과 동물들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신화적인 인간 혹은 국가적인 영웅이나 동물들을 새겨 넣음으로써 구성원들로 하여금 깊은 자긍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도구를 통하여 무의식적으로 역사적인 소속감을 학습하게 하고 뿌리 의식을 통해 과거를 현재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문이나 제기 조각은 마치 족보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제기나 문은 현재의 사람들과 존재의 뿌리가 되는 조상신을 연결시키는 거룩한 수단인 것이다. 사자(死者)의 경우 그들의 시간은 과거에 있지만 문과 제기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산 자와 결합된다. 그래서 사자는 살아있는 사자로서 가족의 일원이자 친족의 일원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 코트디부아르
두 손을 배에 얹은 바울레족 조각
-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를 전쟁과 질병 그리고 기아가 만연한 비극의 땅이라고 이야기한다. 현실은 고통스럽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것을 잠시 스쳐가는 신의 노여움으로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아프리카를 절망한다. 희망을 포기한다거나 절망에 빠지지 않는 마음, 그런 마음을 잘 드러낸 것이 바로 생명의 잉태와 관련된 조각이다. 생명에의 끈을 희망과 직결시키면서 절망에 빠지지 않으려는 것, 그리고 이를 인간의 존재의미와 동행시키는 곳이 바로 아프리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