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ONG JU WON
March 22-April 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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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엄마, 미술해서 미안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두 번째 전시이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전시는 두 번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첫 번째 전시는 12월 13일부터 20일까지 갤러리3에서 열렸고,
두 번째 전시는 3월 22일부터 4월 6일까지 이목화랑에서 열린다.

얼마 전에 작업실을 옮기면서 집에 있던 그림들을 모두 꺼내서 정리했다. 대부분의 그림들은 왁구를 재활용하기 위해,
또는 보관할 공간이 없기 때문에 떼어져야 했다. 엄마와 함께 거실에서 티비를 보며 뻰치로 그림들을 떼어냈다. 엄마는 한쪽 발로 왁구 틀을 누르고
온 몸을 이용해서 캔버스 천을 떼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전시 제목을 시각화 해놓은 것 같아서 속으로 혼자 웃었다.
전시의 제목이 된 <엄마, 미술해서 미안해>는 2017년에 그린 작은 그림에 쓰여 있는 말이다. 잘 지내다가도 혼자 작업실에서 작업을 마주하고
있으면 떠오르는 생각이다. 가끔 스트레스성 탈모나 알레르기를 마주할 때면 사실 엄마보다도 스스로에게 미안하다.

<엄마, 미술해서 미안해>는 어떻게 하면 미술을 계속 하면서 엄마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해 내 자신과 관객들,
그리고 동시대의 청년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또한 어떤 태도로 살아야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미술이 됐든 뭐가 됐든 그것이 직업이라면 그것을 하면서 떳떳하게 일상을 유지할 수 있어야한다. 한 직군의 사람들의 대부분이 엄마에게 미안해한다면
개개인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이 전시는 근본적으로는 극복될 수 없는 불안을 일시적으로나마 없애보려는 시도이다. 결국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물리적이고 수치화된 노력들을 내보임으로써 스스로 불안에서 도망쳐 위안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것들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든 안되든 그것은 두 번째 문제이다.

전시는 <탈-불안 릴레이>, <가계에 보탬이 되는 드로잉>, <사과는 잘해요> 이렇게 세 가지 파트로 이루어진다.
1. <탈-불안 릴레이> 미안하지 않으려는 첫 번째 노력은 나의 성실함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성실하다는 것은 불안을 없애는 것에 도움이 된다.
그것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든 그렇지 않든 정해진 시간동안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원래의 계획은 5개월 동안 일주일에 하나씩 총 23개의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전시를 두 파트로 나누어서 진행하면서, 준비기간이 짧았던 첫 번째 전시에서는 하루에 10호 하나씩 그려갔다. 그리고 그 일이 그림 그리는 것 외에
모든 다른 일들을 못하게 했기 때문에 무리라고 생각돼서, 비교적 시간이 있었던 두 번째 전시에서는 크기 규격을 따로 정해놓지 않고 일주일에 2작업 이상을 해나갔다.

2.<가계에 보탬이 되는 드로잉> 그림을 팔아서 돈을 받아본 경험이 몇 번 있다. 그림을 팔았을 때, 그 경제적 이득 자체가 기쁘기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가치를
인정 받는다는 점에서 기쁨을 느꼈다. 「가계에 보탬이 되는 드로잉」에서 작가는 10x10cm 드로잉 36점을 전시한다. 캔버스 틀을 연상시키는 목재 구조물에 드로잉들이 놓여있다.
드로잉들의 가격은 일관적으로 1만 9천 9백원으로 책정하고, 전시 중에 관객들은 작업을 바로 구매해 갈 수 있다. 수익 중 50프로는 작가의 엄마에게 전달된다.

3.<사과는 잘해요> 「엄마, 미술해서 미안해」는 일종의 사과다. 사과이지만 영혼없는 사과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어쨌든 미술을 계속 해왔고, 또 계속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과는 잘해요」는 미술에 대한 고민들이나, 불안, 혹은 미안한 마음에 대한 대형 회화 작업이다.개인적인 불안함의 집합체이자 기록이지만,
기록을 함으로써 불안은 그림속에 남아있고 작가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엄마, 미술해서 미안해> 첫 번째 전시를 마치고 나서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왔다. 탈-불안 릴레이, 매일 하나씩 그림을 그리면 불안이 없어지냐고.
물론 아니다. 근본적인 불안감은 항상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기준을 정해 놓고 그림 그리는 것은 ‘나는 노동한다 ‘라는 바보같은 위안을 준다.